韓醫學의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疾病의 특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證, 症, 病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症은 외부로 드러나는 병리적 현상 즉 개별적인 症狀[sign or symptom]을 말하며1), 證과 病은 모두 관련 症狀들을 동반하는 넓은 개념의 용어로서, 그 중 證이 한의학의 病因病機 이론을 포괄하는 보다 추상적인 개념이고 病은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병적 상태를 말한다.
‘證’의 문자적 의미는 ‘證明한다’인데 당시의 證明이란 곧 논리적으로 說明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證은 인체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를 언어를 통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인 것이다. 즉, 실제 하나의 어떤 症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발생하게 된 논리적 근거들과 관계를 지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症狀에 대해서도 ‘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던 것이다.
證에 대한 논리적 설명 체계가 무엇인가에 따라 證의 앞에 표현이 붙어서 ‘-證’의 형식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病의 原因(六淫, 七情, 不內外因 등), 인체 구성 요소(臟腑, 經絡, 精氣神血津液 등), 질병(광범위한 의미를 가진 질환), 이론 개념(陰陽, 三陰三陽, 五行 등), 병기(肝陽上亢, 痰迷心竅 등), 치료수단(處方, 鍼灸 등) 등으로 다양하였다.
證은 근세까지 韓醫學에서 病因病機의 내용을 담고 있는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證과, 症狀을 의미하는 證의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사용되어 왔으며, 症狀의 ‘症’은 근세 이후에 서양의학이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證의 俗字에 불과하였다. 證의 두 가지 의미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의 구분은 뚜렷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개념으로서의 證은 그것을 證明하는 症狀들을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개개의 症狀도 외부로 드러나는 病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證明과 說明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證과 辨證의 기본적인 개념, 형식은 이미 『黃帝內經』과 『傷寒論』 가운데 형성되어 있었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특히 證 개념의 두 가지 측면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證이 症狀을 의미할 경우 證이라는 용어 이외에 外證, 形證, 證候, 證狀 등이 사용되었으며,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證은 陳無擇의 『三因方』에서 寒熱虛實 등 병의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된 이후에 金元四大家 특히, 李東垣의 『內外傷辨惑論』을 거치면서 陰陽表裏虛實 등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證의 개념으로 발전해갔다.
明代에 발전한 八綱辨證은 구체적인 疾病, 證, 症狀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證을 더욱 체계화시켰으며, 八綱의 證이 기타 證들과 복합적으로 결합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辨證의 측면에서 보면 八綱辨證의 발달은 이분법적 分別을 거치면서 수월하게 證의 확정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辨證의 사유 과정을 체계화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근세 이후 서양의학이 유입되면서 症狀의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證은 症狀의 의미가 탈락된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證으로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었으며, 특히 서양의학의 주도에 대응하여 證은 韓醫學의 중요한 특징적 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辨證論治’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證은 더욱 더 病因病機와 관련 症狀들이 결합된 복합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어 갔다.
證 및 辨證의 개념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았을 때, 그 전개의 배경에는 전문적인 辨證을 통하여 치료 성과를 높이는 것과 임상에서 辨證을 시행할 때의 실용성을 높이는 것, 두 가지 문제가 주로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경우 病이 발생하였을 때 전문가인 의사가 病因과 病機를 면밀히 파악하여 證을 확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확정된 證 개념 속에는 관련 病因病機가 내포되어 있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간단하고 간편한 辨證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질병의 특성을 파악하고 치료 방책을 세우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證의 의미가 질병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辨證의 실용성을 높이는 데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그것은 症狀의 개념에 가깝다. 만약 전문적인 證明과 論說을 위하여 證의 개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더욱 추상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韓醫學의 역사 속에서 근세까지 辨證을 둘러싼 이상의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시대별로 조금씩 변화가 있기는 하였으나 크게 분리되어 발전하지는 않았다. 근세까지 ‘證’이라는 용어가 현대적 의미의 ‘證’과 ‘症狀’으로 분화되어 오지 않은 사실이 바로 그러한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관점이 함께 공존해 오면서 양자 사이의 긴장감은 늘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예를 들어 『內經』의 臟腑辨證이나 『傷寒論』의 六經辨證 등은 각각의 證을 확정하기 위하여 학습과 훈련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임상 현실에서도 望聞問切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 내부의 臟腑虛實을 판정하거나 三陰三陽의 추상적이고 함축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金元代부터 明代까지 성립된 八綱辨證은 陰陽, 表裏, 寒熱, 虛實의 상대적으로 대별되는 기준을 통하여 다른 여러 證의 속성을 다시 판별함으로써 임상에서 辨證을 실행하는 데에 객관성과 편리성을 높여주었다. 즉 八綱은 陰陽論으로 바탕으로 辨證의 개념을 단순화 한 것으로 완전히 객관적인 진단 지표는 아니나 추상적인 證의 개념을 定性的으로 표현하는 데에 충분하였다.
八綱辨證의 발달로 인하여 여러 證들이 각각의 속성에 따라 분류되거나 서로 결합하거나 또는 상하로 층차를 구성하게 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개념의 證들이 파생되어 전체적인 辨證體系는 오히려 복잡해지게 되었다. 證과 證의 관계로써 구성된 辨證體系가 형성되고 각 證의 의미가 그 속에서 규정되면서, 辨證의 순서상 어떠한 證을 우선 판별해야 하는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病의 인식과 證의 분별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물론 이미 宋代의 『三因方』에서부터 辨證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더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明代의 張介賓은 『景岳全書』에서 醫者가 一心으로 치료에 임하면 한 번에 의심이 풀리면서 이치에 도달할 것이라 하였으며, 반면에 淸代의 徐大椿은 『蘭臺軌範』에서 먼저 病名을 인식한 이후에 病因과 病의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證의 개념이 아직 근세 이후 ‘症狀’의 개념과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상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아니면 좀 더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따라서 辨證 방식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淸代 이후 心火亢盛證, 痰迷心竅證, 痰火擾心證 등과 같이 추상적인 病機를 그대로 표현한 證이 늘어난 것은 八綱辨證으로 구조화된 辨證體系에서 다시 벗어나고자 한 것이며, 반면에 中醫學에서 證素 개념이 나타난 것은 각각의 證을 객관적인 판단 지표의 하나로서 인식한 결과이다.
근세 이후 서양의학의 유입으로 sign과 symptom을 의미하는 ‘症狀’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면서 전통적인 ‘證’ 개념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우선 서양의학과 대비하면서 전통의학의 특성이 곧 ‘辨證論治’에 있음을 강조하였는데, 이때에 證은 분명히 症狀 개념을 완전히 분리시킨 추상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서양의학의 해부학과 현미경 발달에 기반 한 병리학에서 질병을 시각적인 형태의 변화로 인식한 것에 대비하여, 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체 내부의 변화를 한의학의 이론에 입각하여 종합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辨證에 의하여 전통의학의 우수성이 입증된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이와 같이 證의 개념이 다시 인식되었음에도 여전히 症狀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 문제가 韓醫學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것이기도 하며, 명확한 정의[definition]를 가진 서양의학의 症狀 개념이 韓醫學에 유입되면서 證에 대해서도 症狀에 대비되는 명확한 정의 설정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고민은 中醫學에서 시기적으로 먼저 나타났는데, 그 배경에는 전통의학을 실용화 하려는 中國의 정책 속에서 中西醫結合이 이루어진 특수한 상황이 있다.
현재 中醫學에서는 辨證論治의 특성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추상적 개념의 證과 인간의 종합적 사유를 통한 辨證 과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표현하는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證을 모델화 하거나 辨證 思惟 방법을 인지심리학, 인지공학의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證을 현대화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현대의학의 病 개념은, 객관적인 증상과 진단적 결과를 통하여 뚜렷한 병리적 이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일정한 병리기전과 예후를 가진 것을 말하는데, 韓醫學의 病 개념도 이에 영향을 받아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진단기술의 발달과 사회적으로 의학의 법규화, 제도화로 인하여 病名을 우선 공식적으로 확정하고 이후에 辨證施治를 하는 새로운 辨病論治 개념 즉, 中醫學의 辨證分型治療와 같은 것이 대두되었다. 즉 전통적인 證과 病의 관계도 변화된 것이다. 韓醫學의 특정한 證이 관련 病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辨病과 동일한 수준으로 辨證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가, 辨證과 辨病을 적절히 결합하여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가 등의 문제가 현대의 證과 病의 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연구로서 소위 微觀辨證[微視辨證], 證素辨證 등의 개념이 나타났는데 모두 sign이나 symptom뿐만 아니라 최근 발단한 기기진단에 의하여 얻어지는 인체의 정보들까지 분석하여 辨證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微觀辨證은 현대의학 및 과학기술의 진단을 통하여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辨證을 시행하는 것으로 인체 전반의 整體性과 어떻게 연결시키는가의 문제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證素辨證은 전통적인 證 개념을 하나의 진단 factor로 인식하고 여러 factor들을 정성적, 정량적으로 분석 종합하여 전체적인 病의 특성을 재구성해 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모두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證을 탈피하여 객관적 근거와 지표에 의하여 證을 해석하려는 시도들이다. 만약 이러한 연구가 성공하게 되면 醫者의 종합적 思惟를 통하여 辨證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證과 辨證의 객관화는 기존의 證이 아닌 새로운 證을 발견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는데 群體辨證[群集辨證] 연구가 대표적이다. 證素辨證도 각 證素들을 종합하여 전체적인 病證의 특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證 개발 연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心因性 질환이 늘어나면서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질병보다는 syndrome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와 같이 어떠한 병리적 맥락을 가진 syndrome들이 韓醫學의 이론과 결합하여 그대로 證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도 새로운 證의 생성으로 볼 수 있다.
證과 辨證의 현대화, 객관화 그리고 새로운 證의 개발 등은 현재 中醫學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향이지만 韓國의 韓醫學 환경에서도 최근 이러한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으며 단지 표면화 하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辨證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을 때, 현재의 특수한 상황도 결국은 추상적인 의미의 證과 객관적인 의미의 證 또는 症狀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의 역사적 맥락 위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sign은 객관적으로 밖으로 드러나는 병리적 표현을 말하며 symptom은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인식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차이가 있으나, 질병을 규정하고 확인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